어느 블로그의 글

 

60세 정년 연장법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2016년부터는 300인 이상의 작업장에서는 60세까지는 직장에 다닐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리 신문사는 만 56세가 정년이어서 난 2015년 11월에 정년을 맞는다. 겨우 2달도 안되는 차이로 이 정년법의 혜택을 못누린다. 이런 젠장 된장 쌈장!!

 

난 내가 직장에서 정년을 맞이할 거라곤 상상해본 적이 없다. 기자 생활을 하다 결혼, 직장을 그만 두고 전업주부로 살 때도 다시 직장에 나올 줄 몰랐다. 우연히 다시 경향신문에서 일하게 됐지만 그것 역시 얼마나 오래 할지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가슴과 머리로는 수시로 사표를 쓰기도 했으나 정작 진짜로 호탕하게 사표를 던진 적도 없다. 그래도 여러가지 이유로 마음이 시끄러울 때, 혹은 독립해 뭔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또 돋보기를 쓰면서, 구부정한 허리로 직장인으로 살고 싶지도 않았다.

 

2000년 한창 닷컴 바람이 불 때는 여기저기서 같이 일하자는 제안도 받았고, 지금도 이런저런 말을 듣는다. 나와 다른 직종의 사람들은 “하루라도 젊을 때 독립해서 자기 일을 하라”거나 “누가 불러주거든 공공기관 등에서 일해보라” 등의 조언을 한다. 신문사를 나오면 더 넓고 더 밝은 세상이 기다린다는 것이다.

 

반면에 신문기자로 일하다 다른 일을 하는 선후배들은 결사 반대다. 대부분 이런 말을 한다.

 

“비굴한 느낌이 들더라도, 그저 신문사에 버티고 있어요. 안에 있을 땐 못느끼지만 밖에 나와보면 신문사란 둥지가 얼마나 아늑하고 든든한 버팀목이자 보호막인지 알거에요. 월급이 적고 일이 많아도 아직은 우리 사회에서 신문사 기자는 ‘갑’이잖아요. 신문사 명함을 내밀면 어디에든 가고 누구든 만날 수도 있고요. 기자가 아닌 신분으로 관공서에 서류 하나 떼러 가도 쉽지 않아요. 우리야 대통령이나 장관을 만나도 대등한 관계로 취재를 하지만, 기자가 아니면 그냥 아줌마잖아요. 말이 쉽지 을로 살아가기가 그렇게 녹녹하지 않답니다.”

 

갑과 을의 관계라... 동반성장이 화두가 될 때 대기업과 하청업체의 관계가 갑을 관계여서 을사조약(을인 하청업체만 죽어난다는 뜻)이란 말은 들었지만 진짜 갑과 을의 관계는 뭘까. 선생님과 학생이 갑과 을인가, 혹은 상사와 부하 직원? 돈벌어다주는 남편과 전업주부? 방송 프로듀서와 연예인?

 

지금은 세계적인 작가가 된 무라카미 하루키도 한 때는 백수였다. 아내가 직장에 가고 자신이 살림을 맡아하던 하우스허스밴드였는데 정성껏 마련한 저녁을 아내가 “피곤해, 그냥 잘래”라며 먹지 않으면 너무 속이 상하고, 생선구이도 돈 버는 아내에게 맛있는 쪽을 양보하게 되더란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땐 그가 을이었던 셈이다.

 

 

또 알고보면 대통령이나 국회의원도 국민에겐 갑이 아니라 을이다. 우리가 일하라고 뽑아준 사람 아닌가. 그들이 자신이 을인 것을 잊어 교만하고 을 하는 순간, 진짜 갑인 국민으로부터 응징을 당한다.

 

난 의식하지 못해도 난 지난 30년 가까이를 갑으로 살아왔다....고 남들이 평가하는 것 같다. 대중들이 기자란 직업을 좋아하진 않아도 적어도 취재원들이 앞에서 무시하지는 못하니 말이다.

 

언젠가 “아무개가 어떠냐?”라고 누가 물어서 “좋은 사람같던데? 상냥하고..”라고 말하니 돌아오는 말은 이랬다. “그거야 댁이 기자니까 당연히 상냥하게 대했겠죠.” 알고보면 기자를 정말 혐오하는 이들도 많고, 인터뷰 요청도 수시로 거절 당하기도 하고, 원고 청탁도 잘 안받아주는 등 수시로 무시를 당하는데 사람들에겐 그런 내막은 안보이니 어쩔 수 없다.

 

얼마전 검사를 지내고 변호사로 일하는 분과 갑과 을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현역 시절에 서슬퍼런 검사로 유명했을 때는 정말 결기가 대단하고 까칠했는데 이젠 부드럽고 유연해진 모습이다.

 

“검찰을 나와 변호사 개업을 했을 때 황무지에 혼자 버려진 것 같았어요. 전관예우도 옛말입니다. 이제 독립한지 4,5년 되니까 일감도 찾아야 하고, 후배 검사들을 만나면 황공한 표정도 지어야 하고... 그러데 말이에요. 을 모드에 자신을 세팅해 놓으면 그게 또 편해요. 태어날 때부터 갑과 을로 정해진 것이 아니쟎습니까. 갑이 을이 되고 을이 다시 갑이 되기도 하죠. 지난해부터 을로 살기로 마음을 정하고 나니 평화롭습디다.”

 

갑으로 사는 것이 꼭 행복하고 명예로운 일일까. 갑으로 버티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과 절제와 의지가 필요한가. 말 한마디에 신경을 써야 하고, 작은 실수 하나에 추락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써야하고 나도 모르게 을에게 상처를 줘서 원한을 사기도 하고...

 

난 정년 준비의 일환(?)으로 을로 사는 법에 익숙해지려 한다. 요즘은 기자 신분으로 혜택을 누릴 곳도, 촌지도 다 사라졌지만 알량한 특권도 내려 놓아야한다. 또 누굴 만나도 미래의 나의 갑, 혹은 고객으로 생각하고 정성을 다해 대해야겠다. 그건 절대 치사하거나 비굴한 일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겸손하고 친절해서 손해볼게 뭐람. 더구나 권위는 커다란 목소리나 강압적 태도로 생기는 것이 아닌데 말이다.

 

최근에 읽은 <호감이 전략을 이긴다>란 책에도 의사들은 상냥하고 따뜻한 태도의 환자에게 평균 3분 이상 더 진료 시간을 주고 치료에도 더 신경을 써준다는 연구 조사 결과가 나왔다. 내가 돈을 지불하긴해도 의사에게 투덜거리거나 기분 나쁜 태도를 보일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얼마전 항공사 승무원에게 라면 하나를 갖고 온갖 난리를 부린 포스코 에너지 상무는 승객은 왕이자 갑이란 생각 때문에 평생 일한 직장을 떠나지 않았던가.

 

 

생각해보니 내가 수시로 타는 택시 기사분들께도 상냥한 자세를 보이면 목적지 가는 길이 험란해도 짜증내지 않고, 100원 정도는 잘 깍아주기도 했다. 까마득하게 어린 후배들에게도 보다 더 낮은 자세로 내 딸보다 어린 목소리의 홍보 담당자가 거는 전화에도 가능한 부드럽게 응대해야겠다.

 

그게 꼭 이 다음에 홀대를 당하거나 갑자기 변화된 상대의 태도에 당혹하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앞으로 남은 인생을 제대로 살기 위한 방법인 것 같다. 나도 모르게 늘 요구를 하고, 수시로 인터뷰해달라고 강요하고, 거절하면 짜증을 부리고, 우대를 해주지 않는다고 징징거렸던 한심한 갑의 모자를 벗어 버려야지. 그리고 이제 을의 모드로 전환해야겠다. 하긴 난 원래 늘 을이나 병스럽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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